'책이 짐이다. 김영하가 시도 쓰는구나. 미국적 내셔널리즘?'에 해당되는 글 1건

  1. 2010.07.14 이삿짐 6

이삿짐


photo by K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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한국에서 부친 짐들이 도착했다.
뭘 버려야 할지 오래 망설이다 어정쩡하게 데려온 아이들이 태반이다.

가끔 들르는 독일 유학생의 블로그가 있는데, 요즘 놈이 비트겐슈타인에 버닝중이다.
엊그제는 브루크너 7번 교향곡과 <철학적 탐구>의 구조적 유사성을 주장하는 교수얘길 해놨길래
문득 부르크너가 듣고 싶었지만, 음악적 편식이 심한 룸메이트의 콜렉션에선 오래 전에 방출되고 없었다.
짐을 싸며, 가져올까 말까 오래 망설이다 결국 두고 온, 혹은 처분하고 온 책이 제법 되는데
그 중 하나가 2권으로 된 비트겐슈타인 평전이다. 사놓고 펼쳐본 적도 없는 책이다. 
 
책박스가 거의 대부분인 짐들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좀 곤혹스럽다.
난 유학생도 아니고, 선생도 아니며, 학교코뮤니티와 연결될지 알 수도 없는 마당에
이미 불가능해진 어떤 과거를 질질 끌고 온 느낌이다.
가져온 책들, 마무리하지 못한 일과 관계된 것들을 제외하면
대략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싶은 건지가 보이긴 한다.
그걸 할 수 있는 '여유'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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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독일 유학생이 오늘은 김영하의 시 나부랭이(김영하가 이런 짓도 하는구나!)를 적어 놨길래
밥을 먹으며 주욱 흝어보다가 어쩐지 착잡한 기분이 되었다.
'다시 은둔을 꿈꾸는 친구에게' 이 비슷한 제목의 결혼 축시 같았는데,
어떤 시대의 우산을 공유했던 세대의 공통감각 같은 게 느껴져서랄까.
결혼이 '은둔'의 형식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기도 했고.
암튼, 20년지기 문과 3년지기 조과장이 동시에 떠올랐다.

건 그렇고, 이 김영하와 남진우 신경숙 부부가 모두
연구년 등록을 콜럼비아 동아시아연구소에 한 모양이라고, 
같이 놀 기회가 생기면 재미있겠다.라고 모 선배가 말하던데.


몇 장 챙겨온 시디들 중에서
파스텔에서 나온 <폴오스터를 위한 음악>을 돌려본다.
<뉴욕3부작>을 영어로 읽을 일은 절대로 없을테고.
한글로 된 책도 없고. 
뭐, 진도 섬 끄트머리 여관방에 누워
고물 시디피로 진도아리랑을 듣는 꼴이랄까.  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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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들에게 있는, 국기에 대한 일상적 집착(?)을 아직은 이해하기 힘들다.
앤더슨의 <상상의 공동체>를 볼 때마다 뭔가 2%의 실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는데
 미국적 민족주의를 생각할때 마다 앤더슨이 자꾸 떠오른다.
제국주의나 크레올의 문제는 좀 괄호치더라도 말이지.
살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
심지어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서도 언제나 주변적 관심에 불과했던
'인종'의 문제 또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.
토요일 오전, 모 방송에서 하는 일종의 문화가 중계 비슷한 프로의
한 섹션 제목이 positively black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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